[대한행정사회인터넷신문=김영애 기자] 경남 합천군 소재 용암서원(원장 김종철)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김윤철 합천군수, 장진영 도의원, 성종태 군의회 부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22주년 남명 조식 선생 추모제를 봉행했다.
남명 선생의 전 생애에 걸쳐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신 경의(敬義)사상을 흠모하고 오늘날 그 정신을 구현하고자 해마다 행해지고 있는 남명 선생 추모제는, 선생과 관련된 서원이 있는 경남 산청과 김해에서도 순차적으로 개최된다.
선생은 1501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서 출생해 157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특히 영남학파의 거두로서 큰 족적을 남긴 학자이자 사상가며 교육자다.
‘행동하는 지성’ 남명 선생은 왕과 조정의 관리들이 자신에게 벼슬을 제수하거나 천거를 하면 자신이 부족해 나아가지 못한다고 완곡히 사양한 반면, "학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이치를 터득해 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에는 죽을 각오로 임금에게 간언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조선을 움직인 한편의 상소 을묘사직소」(남명조식, 이상영 주해, 김종철 발행, 경남, 뜻있는 도서출판, 2023.)에서는 남명 선생의 사직상소와 관련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조선 명종 때인 1555년, 을사사화로 논밭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백성들이 농사 짓는 백성보다 더 많았을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선생이 이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조정에서 단성현감 벼슬을 내렸다. 이에 단성현감을 사직하는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를 올려 당시의 정치상황을 강력히 비판한다. 임금을 어린아이라 말하고 대왕대비인 문정왕후를 과부라고 말하며 척족세력을 향해서는 야비한 승냥이 무리라고 까지 표현했다』
이후 ‘을묘사직소’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이익보다 의(義)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했으며 상소의 모범답안으로 조선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이날 초헌관으로 참석한 김윤철 합천군수는 인사말씀에서 “영남의 큰 어른인 남명선생이 우리 합천군 출신이라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며, 남명정신이 경남의 정신으로 자리잡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