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제도는 국민이 행정청으로부터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행정부)에 신속한 구제를 청구하고 행정청이 스스로 처분을 재고하는 행정절차이다. 행정심판은 운전면허사건, 보훈사건, 고용노동, 학교폭력, 재정금융, 환경 등 국민 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다.
행정사는 국민의 편익 도모와 행정제도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 전문자격사로서, 과거 대서인으로 불리던 1897년부터 오늘날까지 한 세기가 넘도록 국민의 곁에서 행정심판, 이의신청, 소원, 청원 등의 행정불복절차를 조력해왔다. 이처럼 행정심판과 행정사는 모두 ‘국민’과 ‘행정’을 위한 제도라는 동일 가치를 추구하며 발전해왔다.
국민에게 행정심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다양·복잡한 행정분쟁에 대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행정심판 업무를 수행해온 행정사에게 현재의 심판청구서 작성 업무보다 확대된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행정사와 행정심판 대리권을 두고 경합하는 변호사단체에서는 행정심판을 사법절차라든지 행정소송에 종속된 예비소송인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고 있다. 이는 행정심판 제도를 평가절하하고 모든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법만능주의를 내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행정심판이 사법절차라면 행정소송의 심사단계를 더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행정심판의 사법적 요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행정심판제도 존재이유를 반감시키게 된다.
행정심판이 사법절차를 준용하는 이유는 운영상의 수단일 뿐이지, 궁극적인 목적은 삼권분립체제에서 사법부를 거치지 아니하고 행정부의 자체적인 판단(재결)에 따른 국민의 권리보호와 함께 부적절한 행정처분에 대한 행정부 내부적인 자기반성과 재량의 통제에 있다.
현대 행정법의 발전을 주도하는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행정심판을 순수한 행정절차로 인식하고 있고, 행정법의 초석을 구축한 프랑스는 “행정이 행정을 심사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행정심판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소위 소송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대부분의 분쟁을 민사재판에 의존해왔으나 점차 행정에 관해서는 행정부 내의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과 국가 간의 분쟁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우리 행정사와 유사한 행정서사제도가 있는 일본은, 2014년부터 행정사에게 행정불복절차 대리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은 행정부 내에서 발생한 분쟁의 책임은 행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행정부 내의 자체적인 분쟁해결제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데, 대표적인 행정작용으로서의 행정심판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행정심판제도는 소송제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행정부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 국민의 행정상 임시지위를 인정하는 임시처분제도, △ 처분청 대신 행정심판위원회가 처분을 대신하는 직접처분제도, △ 불합리한 법령의 개선권고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위와 같은 행정심판의 세부제도는 행정심판이 행정의 자율적인 통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분쟁의 책임 당사자를 가리는 사법과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정심판제도는 국민의 입장에서 검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서민들에 대한 배려가 반영될 때 훌륭한 제도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행정법률 시장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것도 국가의 마땅한 책무이며, 변호사에게만 전면적인 행정심판 대리권을 독점시켜 과도한 법률비용을 부담하도록 내모는 것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정심판 대리인으로서 행정사를 택할지 변호사를 택할지는 국민에게 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동안 행정심판제도는 기능과 운영의 측면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발전해왔다. 이제 그에 걸맞은 국민의 접근성 향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민수 행정사 (대한행정사회 이사, 법제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