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는 말
지난 5일, 제12회 행정사 2차(논술)시험이 전국 8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자격시험으로 배출되는 행정사 인원은 매년 약 300명으로, 올해 2차시험에 약 3,200명이 출원한 것을 감안하면 경쟁률은 10:1을 상회한다.
앞서 실시된 1차(객관식)시험에는 약 8,000명이 출원했다. 최근 몇 년간 행정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험에 도전하는 수험생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사 자격시험이 시행된 지 불과 12년 만에 수천 명의 국민이 수년의 시간과 적지 않는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행정사 자격시험의 문제 수준을 보면, 아쉬움을 넘어서 처참하다는 지적이 많다. 수험생들은 현장에 필요한 실질적인 능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당혹해하고 있다.
2. 행정사 2차(논술)시험은 어떤 문제가 나오나?
아래는 올해 2차시험 사무관리론 과목에서 실제로 문제다.
[2024 사무관리론, 문제2] 문서작성과 문서처리의 원칙에 관하여 설명하시오.
이 문제에 따라 수험생이 작성할 (일부)내용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문서는 한글로 작성하고, 문서의 내용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해야 하고,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고, 용지는 A4용지다.”
이러한 문제가 올해 8,000명이 출원한 국가전문자격 시험이라면 믿겠는가?
3. 출제 오류?
이어서 다른 문제도 하나 살펴보자.
[2024 사무관리론, 문제3] 사무개선의 개념과 사무개선을 위한 집단 아이디어 발상법에 관하여 설명하시오.
이 문제는 출제 오류에 가깝다. ‘사무개선’이라는 용어는 국가행정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한 행정업무편람에서도 ‘사무’라는 용어는 과거의 종이문서 중심의 좁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고, 현대에는 과제 해결 중심의 ‘업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편람 취지에 의하면 (국가)행정에서는 가급적 지양해야 할 개념으로 간주한다.
‘사무개선’이라는 용어는 모대학 교수가 2001년 펴낸(최종 제4판은 2014년) “사무관리론”이라는 책에서만 유일하게 확인되고 있다. 본지 기자는 해당 책을 구하여, 사무개선에 해당하는 12줄의 내용을 읽어보았으나,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무개선이란 말 그대로 사무를 개선한다는 의미이고, 그 자체로 충분히 개념 파악이 가능한데, 학식이 짧은 본 기자의 머리로는 어째서 12줄의 설명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무개선이란 용어의 정의는 학계에서 확립된 것이 아니다. 어느 한 명의 주관적인 표현에 불과한 내용을, 공정성 및 형평성을 갖추어야 하는 국가자격시험에 출제하는 것은, 출제주체가 재량을 일탈한 것이다.
한편, 동 문제에서는 ‘집단 아이디어 발상법’에 대해서도 설명하라고 지시한다. 이 역시 위 모 교수의 책에서 ‘사무개선’ 내용 이후 이어져 나오는 내용이다.
해당 책에서는 집단 아이디어 발상법으로 브레인스토밍, 고든법, 오스본의 체크리스트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오스본의 체크리스트법은 아이디어 발상법이지만, 집단 발상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까지 취재 내용을 소결하면, 10~20년전 발간된 책에서, 현재 (국가)행정과 어울리지 않는, 해당 책의 저자 이외에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고 수용된 바 없는 용어를, 국가전문자격시험에 출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4. 행정사 시험과목으로서 사무관리론
행정사 시험에서 사무관리론은 위와 같이 경영학 내용이 출몰하긴 하지만, 크게 보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과 「행정업무 운영 및 혁신에 관한 규정(행정업무규정)」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행정업무규정」은 2011년 전면 개정전까지 「사무관리규정」이라는 법령명을 사용했다. 행정사 최초 시험이 2013년에 실시되었는데, 과거(개정 전) 법령명을 시험의 과목명으로 차용한 것이다. 시험제도실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둔 것이다.
사무관리론 중 「행정업무규정」 부분은 행정사 업무와 일절 관련 없고, 실무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무용하다. 그럼에도 매년 수천 명의 국민이 행정사 자격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무의미한 텍스트를 억지로 암기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시험주관기관인 행정안전부에서는 「행정업무규정」이 행정사 자격시험 출제범위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올해 출제한 ‘사무개선’과 ‘집단아이디어발상법’ 내용이 “국민의 편익 도모와 행정제도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사의 자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해명해야 한다.
5. 나가는 말
행정사 자격시험 전부가 위와 같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법령(절차론, 실무법) 관련 시험문제에 있어서는 행정사 자격시험만의 특수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름 양질의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행정법령에 관해서는 실력있는 학자(대학교수)들이 출제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시험제도의 문제는 잘못된 시험과목(출제영역) 편성이다. 엇나간 시험과목 때문에, 행정사 자격을 갈망하는 수천 명은 합격하더라도 아무 쓸모 없는 지식을 세뇌 수준으로 암기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한시라도 빨리 행정사의 존재이유에 부합하고 행정사의 자질과 밀접한 시험과목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표준직업분류상 ‘사무종사자’였던 행정사가, 각 행정사 스스로 노력으로 ‘정부행정 전문가’로 개정시킨 것처럼, 자격시험제도의 Outlawry인 ‘사무관리론’도 정상화되길 바란다.
이와 관련하여 본지 기자는 지난 18일, 용산 모처에서 행정사제도 담당 행안부 직원분들과 연석하는 영광을 얻었다. 시험과목 등에 대한 열띤 토론에서, 행안부측으로부터 “행정사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위탁했고, 공단에서 일임해서 실시한다”라는 아주 귀한 답변을 들었다.
행정사 김민수 (행정사시험 제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