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입구 하마비" / 사진=전주시 제공
[대한행정사회신문=임태균 ] 전주 한옥마을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 뽑혔고, 세계적인 여행 정보지 ‘론리 플래닛’이 선정한 ‘1년안에 꼭 가봐야 할 아시아 10대 명소’중 3위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전주 한옥마을은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고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며,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남기는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는 장소가 되었으며,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연간 관광객 수가 15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전주(全州)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本鄕)이며, 그래서 전주를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하는데, 풍패는 국가의 건국자 고향을 일컫는 말로서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이 풍패인데서 유래했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통일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도성을 쌓고 고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한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이고, 고조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전주를 떠날 때까지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은 전주에서 터를 잡고 수대에 걸쳐 살았다.
그래서 조선왕조에서는 전주를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이씨의 발상지이자 조선왕조의 뿌리로 대접하였고, 전주 한옥마을의 한 가운데에는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慶) 터(基)’라는 의미의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국보 제317호)를 1410년 봉안한 장소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양처가 자리잡고 있다.
경기전 입구에는 두 마리의 사자(혹은 해태)가 받치고 있는 하마비(下馬碑,전북 유형문화제 제222호)가 세워져 있으며, 표석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에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의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 내용이 새겨져 있어, 위 하마비는 경기전 수호의 의미와 조선 왕실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홍살문" / 사진=전주시 제공
경기전 정문을 지나면 이곳이 왕실 사당으로 성역임을 나타내며 신문(神門)이라고도 호칭되는 가운데 부위에 태극문양과 삼지창을 설치한 붉은 색칠의 홍살문과 경기전 내부 안쪽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외신문, 정전으로 들어가는 내신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정전(正殿,보물 제1578호)이 반듯한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다.
위 홍살문과 외신문과 내신문 등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즉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하며’, 중앙의 가운데는 태조 이성계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神道)’이기 때문이다.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은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 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및 갑석(甲石)을 갖춘 기단 위에 세운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맞배집 건물이며, 그 앞으로 돌출된 정자각(丁字閣)이 있고, 좌우로 익랑(翼廊)이 각 2칸, 동서로 월랑(月廊)이 각 4칸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정전 뜰 중앙에 어진(태조의 혼령)이 지나가는 길인 신도(神道)가 있고, 양쪽으로는 제관들이 다니는 길인 참도(參道)가 있으며, 신도(神道) 양옆으로 평소 화재를 막기 위해 물을 담아 놓는 솥 모양의 드무를 3개씩 모두 6개를 두어 방화에 대비하였고, 겨울에는 물이 얼지 않도록 소금을 넣었으며, 화재막이용 거북이 암수 한 쌍이 정자각 정면의 붉은색 널빤지 지붕에 위아래로 특이하고 이채롭게 장식되어 있다.
정전 중앙의 감실에는 푸른 곤룡포에 임금만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을 쓴 태조 이성계가 정면을 바라보며 용상에 근엄하고 위엄있게 앉아 있고, 위 태조 이성계의 어진 뒤에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가 펼쳐져 있으며, 귀인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보개(寶蓋) 천장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정전 정면" / 사진=전주시 제공
정전 좌우편으로는 용선(龍扇)․봉선(鳳扇)․청개(靑蓋)․홍개(紅蓋) 등 의장물을 두고, 정전 안 정문 좌우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호위하는 운검(雲劒) 한 쌍을 세워 두었다.
또한 정전의 내신문 동편의 문을 지나면 매화나무․회화나무․배롱나무․단풍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팽나무 등 수령이 오래된 큰 아름드리나무들의 군락지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푸르른 울창한 대나무 밭 등의 산책로를 만나게 되고, 이를 따라 걷다 보면 세종 21년에 설치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을 비롯한 역사적으로 국가 중요서적을 보관하였던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활자로 출판하여 전국에 모두 4사고(史庫)를 두고 1부씩 보관하였으며, 그중 임진왜란때 다른곳의 사고(史庫)에 보관하였던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고,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보관중이던 조선왕조실록 원본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었다.
이곳 전주사고(全州史庫)에는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472년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정과 이를 지켜내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노력, 다양한 재현을 통해 감상하고 우리 기록유산이 간직한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껴보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2층 전시실에서 그림과 도표를 통해 전주사고 편철사, 임진왜란과 실록의 보존(피난), 실록 편찬방법, 실록의 과학적인 보관방법 등 역사 공부와 복본으로 제작된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