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정직과 성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공직에서 민간으로, 법에서 사람으로. 전문성과 신앙적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 ‘행정사’라는 직업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의 가능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이종민 행정사의 두 번째 여정을 따라가 본다.
◇ 공무원의 옷을 벗고, 행정사의 길을 입다
남양주시청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이종민 행정사는 처음부터 행정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는 택지개발, 도시계획, 건축설계시공, 토목설계시공 등 다양한 민간사업에 도전하며 퇴직 후 삶의 방향을 모색했다. 그러나 경험은 그에게 다른 결론을 남겼다.
“제 강점은 실무와 법을 아우르는 행정력이더라고요. 결국, 행정사야말로 제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 선배들은 퇴직 후에도 이 길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게 제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종민 행정사는 남양주시청에서만 16년, 공직 생활 전체로는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길을 걸어왔고, 누구보다 복잡한 행정의 내막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 남겨놓은 어느 날, 그는 선택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내가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공무원들이 정년하면 대부분 퇴직 후엔 쉬겠다고 하세요. 여행 다니고 쉬다가 3년쯤 지나면 뭔가를 하려고 해요. 근데 그땐 이미 늦습니다.”
그는 ‘두 번째 인생’의 출발점으로 그가 많이 경험했던 인허가 업무와 약간 관련성이 있는 도시개발과 건축 관련 일을 했다. 그러다 올해부터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해 건축과 연계한 행정사를 시작했다.
“행정사 자격은 시작일 뿐입니다. 제가 가진 경험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확장할지가 중요하죠.”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무원 출신으로서 행정사의 역량이 제한적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 행정사 밴드를 보면 대부분 개발행위만 다룹니다. 하지만 진짜 블루오션은 도시계획, 재개발, 산업단지입니다. 우리가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시도조차 안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 '혼자 하면 어렵고, 함께 하면 된다'는 진심
행정사 업무 중 가장 큰 장벽은 바로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태도다. 이종민 행정사는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다 잘할 필요 없습니다. 교통, 환경, 재해, 문화재, 전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과 협업하면 됩니다.”
그가 강조하는 건 네트워크와 협업이다. 실제로 그는 LH, 국토부, 기재부, 소방서, 도시가스 등 다양한 인맥을 기반으로 각종 사업을 추진해왔고, 밴드와 단톡방을 통해 전문 행정사들과 지속적으로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행정사는 한 장의 서류만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를 조율하고, 방향을 정하고, 흐름을 만드는 ‘총괄 매니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외주를 통해 전문가의 문서를 취합하고, 전체 계획은 행정사가 총괄”하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역할 분담이라고 말한다. 건축사, 토목사, 교통·환경 엔지니어와 협업하면서도 중심축은 ‘행정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폐기물 처리시설 관련 민간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자본금이 없어 무산됐던 경험을 떠올린다.
“사업주는 건축 아이디어만 있었고, 자본이 없었어요. 사실 2억이면 시작할 수 있었는데, 경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무산됐습니다.”
이종민 행정사는 자금, 법률, 행정, 설계, 공사를 모두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서 행정사의 위치를 강조한다.
“우리는 설계도 그릴 줄 알고, 법도 해석할 줄 알고, 행정절차도 알고 있잖아요. 이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직업이 또 있을까요?”
◇ ‘기술사’까지 도전하는 이유
그는 현재 ‘건축시공기술사’ 자격 취득을 준비 중이다. 일반적인 행정사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지만, 그는 왜 기술사에 도전하고 있을까?
“기술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몰랐던 기술과 공정이 보입니다. 단순히 허가를 내주는 입장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실제로 그는 인허가뿐 아니라 건축·토목·시설물 관리까지 아우르는 원사이클(One Cycle) 전문가를 목표로 한다. 자격증만 따는 게 아니라, 자기 역량을 입체화하는 것이다.
“종합건설 면허까지 따서, 인허가부터 시공,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일이 단절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요.”

◇ ‘정직’과 ‘성실’이라는 오래된 단어
그의 사무소 이름은 ‘퍼트리(fir tree)’. 전나무라는 뜻이다. 흔들리지 않고 곧게 자라는 전나무처럼, 그는 ‘정직과 성실’을 삶의 신념으로 삼는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정직한 사람을 만나길 원합니다. 나 자신이 그렇지 못할 때도, 만나는 사람만큼은 정직하고 성실하길 바라거든요.”
이종민 행정사는 모태 신앙인이다. 과거 방황했던 시절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술도 마시고, 다른 즐거움도 쫓고… 세상 재미에 빠져 살았죠. 근데 결국 돌아온 건 하나님 말씀 하나였습니다.”
지금 그는 안수집사로 활동하며, ‘베풀며 사는 삶’을 실천하려 한다. 특히 은퇴를 앞둔 선배 공무원들에게는 ‘후배들을 위해 업역을 넓혀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국장님들, 그냥 편히 쉬겠다는 생각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후배들이 따라갈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자문위원이든, 협업이든, 사회를 위해 또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 “행정사는 공무원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행정은 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자문위원, 심의위원… 점점 더 많은 역할이 민간으로 넘어옵니다. 이건 기회입니다.”
그는 실제로 도시계획심의위원회, 민간투자심의위원회, 유지관리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에 행정사가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법무사, 건축사, 변호사, 세무사 등이 주로 심의를 맡고 있지만, “실제 행정을 잘 아는 사람은 전직 공무원 출신 행정사”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자문위원은 수익이 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영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문위원으로 들어가 있으면, 관련 업계에서도 우리를 믿고 찾게 됩니다. 그게 곧 행정사의 영역을 넓히는 길이죠.”

◇ 앞으로의 계획 – 공동체 기반 행정
그의 궁극적인 꿈은 ‘공동체 기반의 행정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한 개인을 위한 인허가가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정사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은 물론 다른 직종에 있는 전문직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사는 이제 단순히 하는 서류 대행을 넘어서야 합니다. 기획하고, 연결하고, 더 나아가 지역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발전해야죠.”
그는 마을단위 개발에서 주민 의견 수렴, 분쟁 조정, 지속 가능한 개발 방안 제시 등 종합적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좋은 도시는, 좋은 행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후배 행정사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일이 들어오면 두려워하지 마세요. 무조건 수임하세요. 모르면 물어보면 됩니다. 저도 모르는 건 밴드에서 물어봅니다. 그게 네트워크입니다.”
이종민 행정사의 이야기는 ‘행정사’라는 직업을 재정의하는 데 충분했다.
그는 단순한 서류 대행인이 아니라, 행정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 민간과 국가 사이를 잇는 중재자, 협업과 조정을 이끄는 관리자였다.
그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현장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책임, 국가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었다.
“하루 한 장의 서류를 제대로 써주는 것, 그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말이 그 어떤 철학보다 묵직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