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행정사회신문=임태균 ] 전주 한옥마을내에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주 동학혁명 기념관은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시민 및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꼭 들려봐야 할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동학은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즉 ‘생명의 소중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평등과 자연의 소중함’을 그 근본으로 하는 ‘생명 존중사상’을 뜻하고, 이는 ‘사람 대하기를 하늘 대하듯 하라(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동학의 사상을 완성시키고 꽃피운 사람이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마라’(不殺人不殺物) 동학농민군의 첫 번째 행동강령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반외세를 표방한 역사상 최초의 우리나라 민족운동이었고, 동시에 한국형 근대화 운동의 시발점으로, 1984년(고종 31년) 동학 세력이 농민들과 주축이 되어 일으킨 대규모 봉기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최초 1894년 1월10일 일어난 고부농민 봉기가 그 출발이며,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捧準)이 선두로 김도삼(金道三) ,정익서(鄭益瑞) 등 동학교도와 고부 농민 1천여명과 함께 봉기하여, 고부 농민들을 상대로 부패와 수탈 등 온갖 폭정을 저지른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을 상대로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점 봉기가 1차 동학농민혁명이다.
그럼 농민들을 상대로 온갖 폭정을 저질러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제공자인 고부군수 조병갑은 어떤 역사의 반전(反轉)을 맞이 했을까?

조병갑은 동학농민혁명 고부 1차 봉기 당시 한밤중에 변장한 상태로 고부군을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고, 조정에서는 사태 수습을 위하여 조병갑에게 민중봉기를 초래하고 국고를 횡령했다는 책임을 물어 그를 파면하고 제주도에 유배시켰으나,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1년여 잠시 근신하다가 곧 복권되었으며, 조병갑은 이후 법부(법무부) 국장을 거쳐 고등 재판관(오늘날 고등법원 판사)로 승진하여 1898년 동학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에게 고등 재판관의 신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직접 발발 원인 제공자인 고부군수 조병갑은 처벌되기는커녕 오히려 고등 재판관으로 승진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최고 지도자인 최시형을 심판하게 되면서, 역사의 반전(反轉)을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