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DMZ 고엽제 피해, 예비역 군인의 국가유공자등록 이의신청[대한행정사회신문=김정섭 기자]
전쟁은 총성이 멈추면 끝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어떤 전쟁은 총성이 멈춘 뒤에도 사람들의 몸속에서 계속된다. 화학물질로 인한 전쟁의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늦게, 더 깊게 나타난다. 고엽제가 바로 그런 전쟁의 흔적이다.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직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비무장지대(DMZ) 인접지역에서의 고엽제 피해 문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논쟁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보훈 행정의 현실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국가보훈부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예비역 군인인 민00씨의 사례는 우리 보훈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00씨는 1975년 10월 23일부터 1978년 7월 25일까지 육군 제28사단 81연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그의 근무지는 남방한계선 인접지역, 즉 최전방이었다. 당시 그는 연대 참모 운전병으로 근무하면서 상황 대기와 각종 사역에 수시로 투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임진강 방향에 위치한 미군 관측시설(OP) 주변에서 이른바 ‘사계청소’ 작업에 반복적으로 참여했다. 사계청소란 사격 진지 전면의 수풀과 장애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당시 전방부대에서는 이를‘시계불량처 제거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했다.
문제는 이 작업의 방식이다. 당시 전방부대에서는 넓은 지역의 식생을 단기간에 제거하기 위해 단순한 벌목이나 예초 작업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제초제를 살포하는 방식이 사용되었고 많은 장병들이 이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 제초제가 바로 고엽제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은 DMZ 지역에서의 고엽제 사용 시기를 1967년 10월 9일부터 1972년 1월 31일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씨가 복무한 1975년 이후의 시기는 법률상 인정 범위에서 제외된다.
국가보훈부가 그의 신청을 “요건 비해당”으로 판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과연 고엽제 살포가 법률에 명시된 날짜와 동시에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군사작전은 법률 조문처럼 정확한 날짜에 맞춰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에서의 제초작업은 군사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루어졌고, 당시에는 화학물질의 장기적 인체 영향에 대한 인식도 지금처럼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연구자료와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까지도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서 미군 주도의 제초작업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 전방부대 상당수가 “시계불량처 제거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제초 작업에 투입되었다는 증언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고엽제 사용 시기가 법률에 명시된 기간보다 더 길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훈 행정은 오직 법률에 규정된 기간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형식적 기준 적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입증 책임의 구조다. 군사작전과 관련된 기록은 대부분 군 내부 자료이며, 상당수는 비공개 문서이거나 이미 폐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개인이 이러한 자료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도는 고령의 신청자에게 “당시 고엽제가 살포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다. 군사작전의 실체를 입증할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게 있다. 군사작전을 수행한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정보와 조사권을 가진 국가가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다.
민00씨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고엽제 살포 작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군 복무 당시 임진강 방향 미군 관측시설 주변 사계청소 작업에 투입되어 고엽제 살포 작업을 수행하던 중 독성으로 인해 현장에서 쓰러졌고 사단 의무대로 후송되어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병적기록표에 남아 있는 의무대 입·퇴실 기록을 통해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는 정황이 존재한다.이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군 복무 중 특정 작업 과정에서 신체 이상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의무대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인 질병으로만 볼 수 없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법률상 기간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판단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군 복무 환경과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하는 것이다.
더욱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군인이 국가의 수호와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된 직무 수행 중 부상하거나 질병을 얻은 경우 공상군경으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화학물질이나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건강 피해는 대표적인 위험 직무에 해당한다.
민00씨가 수행했던 고엽제 살포 작업 역시 이러한 유해물질 취급 직무 수행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고엽제법에 규정된 시기 이후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행정 판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보훈 제도의 본질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약속한 책임의 제도화다.
국가를 위해 최전방에서 복무했던 군인이 수십 년이 지난 뒤 자신의 질병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하는 현실은 결코 정상적인 보훈 체계라고 보기 어렵다.
고엽제 문제는 이미 오래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피해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다. 법률의 날짜가 현실의 진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기록의 공백이 국가 책임의 공백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민00씨의 사례는 우리 보훈 제도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고엽제 피해의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기준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정과 국가 책임의 원칙이다. 전쟁은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국가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