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인 2024년 7월, 본 기자는 일명 ‘책가방(택배) 행정사’로 불리며 여행사의 불법 출입국 업무를 대행하던 70대 후반의 A 행정사를 만난 바 있다.
당시 그는 실명과 사진을 불허한다는 조건 하에 어렵게 인터뷰에 응하며, 생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행기관 등록증만 빌려주는 ‘서류 접수원’으로 전락한 현실을 토로했다.
2026년 3월 현재, 기자는 다시 그 현장을 찾았다.
80대에 접어든 A 행정사는 여전히 같은 여행사 구석, 조그만 책상 하나에 의지해 책가방 행정사를 하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행정사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책가방 행정사’ 실태는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교묘하고 단단하게 고착화되어 있었다.
다시 만난 A 행정사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 만큼이나 짙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2024년 당시 그는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누가 도와준 적 있느냐”며 사회적 비난보다 당장의 월세와 생활비가 더 무겁다고 말했다. 2026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 양반, 2년 전에도 말했잖소. 내가 하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니라고. 나이 여든에 어디 가서 경비를 서겠어, 막노동을 하겠어? 그저 지하철 타고 다니며 서류 접수해주고 받는 돈이 유일한 밥줄인데, 이걸 어떻게 놓겠나.”
그는 여전히 여행사가 준비해준 서류를 받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대행 접수만 하고 건당 수수료를 챙긴다.
사무실 임대료조차 낼 수 없어 여행사 한쪽 귀퉁이를 빌려 쓰는 처지지만, 여행사 입장에서는 행정사 간판을 걸어 단속을 피할 수 있는 ‘방패’가 되고, 행정사 입장에서는 지출 없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공생’의 구조가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A 행정사가 ‘책가방 행정사’의 길을 걷게 된 근본 원인은 2026년 현재에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는 과거 공직 생활을 마치고 당당히 행정사무소를 개업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측량업자나 건축사 등에 밀려 규모가 큰 인허가 업무를 수임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행정사가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인허가 신청조차 공무원들이 반려하거나 타 전문직을 거쳐 오라고 종용하는 관행이 그를 시장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A 행정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행정사회와 각 지회 간담회에 참석하는 행정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참석 인원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한다.
전문 자격사라는 자부심으로 시작했지만, 실질적인 수익 구조가 열악한 초보 및 고령 행정사들에게 여행사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독약’이 되고 있다.
대한행정사회는 지난 수년간 불법 출입국 업무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각 지자체를 대상으로 행정사 고유의 인허가 전담 활동을 강화해 왔다.
또한, 지방행정사회 등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멘토링 위촉식과 실무 교육을 강화하며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A 행정사는 “출입국 업무만 불법이라고 난리인데, 다른 분야에서 행정사 업무를 가로채는 불법은 왜 못 잡느냐”고 반문한다.
타 자격사나 무자격자가 행정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방치하면서, 생계형 범죄에 가까운 고령 행정사들의 ‘대행 행위’만 단속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2026년 현재, 외국인 집단 거주지역에 남아 있는 행정사 사무소는 과거 7~8곳에서 이제 2~3곳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곳들도 여행사의 불법 업무 대행에 밀려 월세조차 내기 버거운 실정이다.
‘책가방 행정사’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행정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문제다.
고령 행정사들을 위한 수익 모델 창출, 인허가권의 실질적 보장, 그리고 무자격자의 업역 침범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이 삼박자를 이뤄야만 이 음성적인 공생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의 뒤로, A 행정사가 무거운 서류 가방을 고쳐 메며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치매 와서 못 할 때까지는 할 것 같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2026년 대한민국 전문 자격사 제도의 서글픈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