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원,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스요금이 이상하게 많이 나왔는데, 항의하려고 해도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시청에 민원을 넣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양식도 복잡하고 어디다 내야 할지도 몰라 그냥 포기했어요.”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아니면 직접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는가?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가 점차 디지털화되고, 행정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 ‘민원’이라는 단어는 장벽처럼 느껴진다.
특히 노인, 장애인, 외국인, 청년층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는 정보 부족, 행정 용어 이해 부족, 디지털 문해력의 문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이 겹쳐 민원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인 경우가 많다. 민원 접수는 행정 참여의 첫걸음이자 국민 권리의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국민이 “복잡해서 포기한다”는 현실은 우리가 마주한 큰 과제였다.
이처럼 말하며 행정기관을 멀리했던 수많은 국민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한행정사회의 협조로 ‘국선 행정사 제도’를 전격 도입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법적 절차나 복잡한 민원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손쉽게 민원을 제기하고 행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기존에는 행정심판을 제기한 이후에야 국선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었지만, 국선 행정사 제도의 도입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하기 전, 즉 민원서류를 처음 작성하는 단계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명백히 제도의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 누구나, 어디서든, 민원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 누구나 공정하고 편리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 행정의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행정 용어를 이해하고 관련 규정을 파악해야 하며, 요구되는 서류를 빠짐없이 갖추는 일 역시 쉽지 않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 고령자 및 독거노인 : 스마트폰 사용이나 공공시스템 이용이 익숙하지 않아 초기 민원 접근이 어려움
△ 장애인 및 신체 불편자 : 이동의 어려움과 의사소통 제약으로 행정기관 방문 자체가 부담
△ 청년층 : 행정절차에 대한 이해가 낮고 법률 상담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
△ 북한이탈주민 등 외국계 이주민 : 제도 이해도와 행정용어 장벽으로 인한 민원 기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선 행정사는 ‘행정 실무 경험이 풍부한 공직 퇴직자’ 중심으로 선발되어 활동한다. 이들은 단순한 민원서류 작성뿐 아니라, ‘민원 제기 여부 판단’, ‘법령 해석 및 절차 안내’, ‘행정기관과의 소통 지원’까지 폭넓게 관여한다.
◆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국선 행정사 제도는 특히 다음과 같은 취약계층을 우선 지원 대상으로 한다.
△ 가족돌봄청년 △ 북한이탈주민 △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 △ 독거노인 △ 사회복지기관의 추천을 받은 취약 계층 등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행정 상담, 민원 서류 대행, 현장 방문 상담이 제공된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상담하거나 직접 도움을 요청하면, 해당 요청 내용을 바탕으로 국선 행정사가 배정된다. 이후, 민원 신청 초기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밀착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민원 신청 자체가 불필요한 경우에는 오히려 신청을 말리기도 하며, 사안에 따라 다른 구제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서류작성 보조 수준을 넘어선, 상담형 전문 행정서비스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행정사의 사회적 책임
국선 행정사 제도는 민원인이 겪는 사각지대를 메우고, 국민의 권리구제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현행 제도에서는 민원 과정 중 어려움을 겪는 경우, 개인이 유료 법률 상담을 받아야 하거나, 변호사나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는데, 이는 비용 부담과 접근성 문제로 인해 취약계층에게 사실상 진입장벽이었다.
국선 행정사는 이를 공공의 자격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행정사의 역할 확장과 사회적 책무를 상징한다.
또한, 국선 행정사들은 단순히 민원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제도의 문제점도 함께 파악하여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협업을 통해 제도 개선 제안까지 이어질 수 있다.
◆ 국선 행정사의 주요 역할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번 제도 도입과 함께, ‘긴급 민원’에 대한 신속 상담 체계도 함께 구축했다.
위급한 상황이거나, 당장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는 당일 상담도 가능하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국선 행정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대면 상담을 진행한다.
이는 단순한 공공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찾아가는 행정서비스’의 실질적인 시작이자, 고령화 사회 및 1인 가구 증가 시대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선 행정사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민원 관련 행정 상담
민원이 가능한 사안인지 여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설명
2. 서류 작성 대행
청구서, 진정서, 사실관계서, 의견서 등 각종 문서 작성 지원
3. 관련 기관 제출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을 통한 서류 제출 업무
4. 현장 동행 및 대면 상담
민원인의 상황에 따라 직접 현장 방문, 관련 기관 동행 상담
5. 민원 불필요 사안에 대한 안내
불필요한 민원 방지, 대체 해결 방법 안내
후속 절차 안내
민원 제출 후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 및 사후 모니터링

◆ 지원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
국선 행정사의 지원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
① 국민권익위에 직접 지원 신청
민원인이 직접 국민권익위 민원 접수 시스템이나 상담 전화를 통해 국선 행정사 배정을 요청할 수 있다.
② 국민권익위 상담 과정에서 발굴
국민권익위가 고충민원 상담·접수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발굴하여 국선 행정사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필요시 국선 행정사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거나 민원인의 자택에 찾아가 대면 상담을 진행하며, 긴급한 경우에는 ‘당일 지원’도 가능하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하였다.
국민권익위는 민원서비스를 받은 대상자를 중심으로 만족도 조사 및 피드백을 실시해 향후 정책 개선에 활용할 방침이다.
◆ 국민 중심의 행정, 그리고 새로운 길
국선 행정사 제도는 단순히 한 사람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행정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장치다. 특히, 지금까지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소외된 이웃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언어와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깊다.
행정사는 이제 단순한 서류 작성자가 아니라, 국민과 행정을 잇는 ‘공공 소통자(Public Communica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국민이 보다 쉽게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선 행정사. 이 제도의 시행이 우리 사회에 더 큰 정의와 평등, 그리고 포용을 가져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