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길연 행정사. 사진=조훈환
◆ “실무를 하지 않는 강의는 반쪽짜리”
인길연 행정사가 처음 행정사의 길에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대학교수이자 대구경북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이었다. 협동조합을 이끌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자주 접했고, 그들의 사업을 돕는 과정에서 ‘행정’과 ‘인허가’가 사업 성패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당시 그는 행정사협회에서 이론과 실무를 강의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내가 실무를 안 하면서 가르친다는 게 과연 온전한가?”
이 질문이 그의 인생 방향을 바꿨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살아 있는 지식을 전해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2017년 1월, 그는 행정사 사무실 문을 열었다. 첫걸음은 출입국 행정 업무였다. D4(어학연수)와 D2(유학) 비자 업무에 집중하며, 그는 단기간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구축했다.
“비자 발급에서 중요한 건 서류만이 아닙니다. 불허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이죠.”
그의 전략은 정확한 법 조항 이해와 철저한 사전 준비였고,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D4·D2 비자 불허 사례가 거의 없었다.
◆ 후배들에게 전하는 세 가지 원칙
인 행정사가 교육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세 가지다.
첫째, 전문가가 돼라.
둘째, 자격증을 가볍게 보지 마라.
셋째, 자존심을 내려놔라.
그는 특히 공무원 출신 후배들에게 “간과 쓸개를 문설주에 걸어놓고 들어가라”는 비유를 쓴다. 국장, 과장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관청의 실무 담당자를 찾아가 90도로 인사하며 배우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체하지 말고,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부터 실무자는 마음을 연다”는 게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는 밥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비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달인’을 찾아가 월급을 받지 않더라도 3개월, 6개월 동안 허드렛일을 하며 배우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진심을 다해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면,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그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가 추천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출입국 행정, 토지 보상, 사실 조사, 민원 대행, 자동차 등록, 산림·토목 인허가 등이다. “이 중 하나만 제대로 파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인 행정사는 지금도 출입국 사무소에 갈 때면 “저는 잘 모릅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아는 담당자가 많지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업무 처리에 있어 가장 큰 힘이라고 믿는다.
그 결과 그는 각종 출입국 사무소, 지방자치단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 관계가 곧 신뢰로 이어진다. “겸손은 대가 없이 얻는 가장 값비싼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 “행정사는 기회의 직업”
인길연 행정사는 행정사라는 직업을 단순한 ‘서류 대행업’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끊임없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선에서 행정사의 가치는 단순히 법률이 허용한 업무 범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법이 규정한 영역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사업과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행정사는 법률로 보장된 업무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산업, 국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출입국 업무 하나만 보더라도 단순히 비자 신청서 작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유학·취업·투자·법인설립·부동산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과 정보가 또 다른 기회를 만듭니다.”
실제로 그는 베트남 유학 비자 업무를 맡으며 자연스럽게 현지 투자 법인 설립 컨설팅을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베트남 내 부동산 자문, 인력 공급 사업, 그리고 양국 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는 단순히 ‘비자 대행’이라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과였다.
그가 바라보는 행정사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법이 정한 권역 안에서만 움직여도 충분히 수익성이 있고,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영역이 계속 생겨난다. 문제는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행정사법이 보장하는 영역을 지키고, 배우는 데 인색하지 않으면, 이 직업은 평생 가져갈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는 행정사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제화 시대에 행정사는 더 이상 지역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처럼 베트남과 연결할 수도 있고, 다른 나라는 또 다른 시장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어디에 연결하느냐입니다.”
그에게 행정사는 한정된 면허업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기회를 창출하는 ‘기획자’였다. 그리고 그 기획의 출발점은 늘, 의뢰인의 필요를 깊이 이해하는 데서 시작됐다.
인길연 행정사의 조언은 단순히 후배 행정사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직업이든, 스스로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고,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카페 서들 전경. 사진=조훈환
◆ 카페 ‘서들’의 탄생
인 행정사는 행정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향 문경에도 뿌리를 내렸다. 2012년, 우연히 마음에 든 땅 500평을 매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자, 그는 아내와 함께 그 땅에 농막을 놓고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인근 산과 땅을 계속 사들여, 현재 보유한 토지는 무려 4만5천 평에 이른다.
이 중 카페로 활용되는 공간은 약 2500평, 나머지는 산책로·세컨하우스·자연 공간으로 꾸몄다. 흙으로 만든 맨발 산책로, 족욕 공간, 차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자리… 서들 카페는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닌, 방문객에게 ‘휴식과 치유’를 제공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아내가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인 행정사는 주차 관리와 손님맞이도 직접 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 공간을 넘어,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유통 사업으로 향해 있다.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인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피 원두에 관심을 가졌다. 우연히 알게 된 레드리버 그룹 회장이 베트남에 7.5헥타르 규모의 커피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곳의 원두를 한국에 수입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인 행정사는 이를 서들 카페뿐 아니라 전국 유통망으로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다.
“저희 카페는 베트남산 원두만 쓰진 않지만, 직접 가져온 원두를 로스팅해 제공하죠. 앞으로는 대기업과 협력해 한국 전역에 유통하려 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다. 주인인 인길연 행정사의 삶, 도전, 그리고 그의 사업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다. 카페 뒤편에는 ‘서들’이라는 이름처럼 자연석이 무더기로 흩어져 있고, 앞으로는 잔잔한 강이 흐른다. ‘배산임수’의 입지처럼 인 행정사의 인생 역시 등 뒤로 단단한 기반을, 앞으론 넓게 펼쳐진 가능성을 두고 걸어가고 있다.
문경의 강가에서, 그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베트남 사업과 국내 활동을 오가며, 오늘도 그는 ‘겸손한 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배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