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행정사회신문=김진경 ]

탄소국경제도,새로운 무역질서의 출발선
지구의 경고와 탄소의 시대
“지구는 더 이상 미소를 잃어버린 푸른 행성이다.” 북극의 해빙은 이미 1979년 대비 70%가 사라졌고, 대서양 해류 순환(AMOC)은 붕괴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2025년 2월, 영국 「가디언」지는 북극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20도 이상 높다는 기후 보고서를 전하며 “기후시스템의 급격한 전환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경고했다. 폭염, 홍수, 산불, 가뭄이 일상화된 시대,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것은 산업의 존속과 무역의 생존, 국가의 전략을 결정짓는 변수가 되었다. 그 변화의 정점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전력 등 6대 품목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량에 비례한 ‘탄소가격’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만큼 세금을 내야만 하는, 이른바 ‘탄소관세 시대’의 개막이다. 이 제도의 본질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국제무역의 규칙 자체를 바꾸는 시스템 전환에 있다. “탄소는 새로운 관세이고, 탄소가격은 새로운 경쟁력이다.”이 한 문장이 곧 세계 경제의 새로운 법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탄소국경제도, 왜 도입되었는가
EU는 2050년 탄소중립(Net Zero)을 목표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Fit for 55 패키지’를 추진해왔다. 이는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 감축을 위한 청사진이다. 그러나 각국이 서로 다른 기준과 규제를 적용하면서,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 현상이 심화되었다. 결국 EU는 “누가, 어디서 만들었든 탄소는 동일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 결과물이 바로 CBAM이다. CBAM의 핵심은 ‘탄소의 국경세화’이다. EU 역내 기업은 이미 배출권거래제(EU ETS)를 통해 탄소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역외(非EU) 기업이 동일 품목을 수출하면서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EU 산업은 불공정 경쟁에 노출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EU는 수입품에 대해 배출량을 산정하고, 그만큼의 탄소비용을 인증서(CBAM Certificate) 형태로 납부하도록 했다. 결국 이는 환경정책이자, 산업보호정책이며 동시에 새로운 무역질서의 헌법이다. 이 흐름은 이미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 영국은 「UK ETS 연계형 CBAM」, 캐나다와 대만 역시 자체 탄소조정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탄소를 중심으로 한 ‘기후 블록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산업의 위기와 과제
문제는 한국이 이 거대한 변화의 직격탄을 맞을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수출국이자, CBAM 1차 대상 품목의 주요 생산국이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비료 산업은 EU 시장 의존도가 높고, 제품 단위당 탄소배출량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EU 수출 비중이 전체의 8~10%에 불과하더라도, CBAM의 간접효과는 전 산업으로 확산된다. 2024년부터 시작된 전환기간에는 수출기업이 단지 ‘탄소배출량 보고’만 하면 되었지만, 2026년 본 시행 이후에는 인증서 구매 의무가 부과된다. 이는 곧 수출 원가 상승, 가격경쟁력 약화,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CBAM은 단순한 행정 보고가 아니라 기업 생존의 문턱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대응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은 배출량 측정·보고·검증 체계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은 “우리는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곧 데이터가 없으면 대응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탄소정보의 부재는 곧 경쟁력의 부재다.
법과 제도의 공백 — “K-CBAM”의 시급성
우리나라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K-ETS)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CBAM과 직접 연계되어 작동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 체계는 아직 미비하다. EU는 탄소회계와 무역, 환경규제를 통합 관리하는 반면, 우리 제도는 환경·산업·외교·세제·무역이 각각 분리되어 움직인다. 이로 인해 기업의 대응도, 정부의 정책 집행도 단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의 재설계다. 첫째, 「탄소국경조정 대응특별법(가칭)」을 제정하여 CBAM 대응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산업별 탄소회계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탄소 데이터의 측정·보고·검증 체계를 국제 수준으로 표준화해야 한다. 탄소배출 데이터를 기업 회계와 연동하는 ‘탄소원가 회계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배출량과 원가가 실시간으로 추적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EU와의 협상력 확보를 위한 법적 근거도 필요하다. WTO 보조금협정(SCM)과 기술장벽협정(TBT),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근거로 CBAM이 부당한 무역장벽이 되지 않도록 국제법적 해석과 대응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닌 국가전략의 문제다. 탄소국경제도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규범의 장(field of norms)’을 형성하고 있으며, 법과 제도를 얼마나 신속히 정비하느냐가 곧 국가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산업구조의 전환과 사회적 파급효과
탄소국경제도는 산업구조의 변화를 넘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에너지 효율이 낮고,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며,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녹색이 곧 경쟁력”이라는 구호는 이제 구체적인 경제원칙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CBAM 시행은 또한 국민 생활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탄소세, 전력요금 인상, 물류비 증가 등은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저탄소 기술전환 지원, 탄소회계 교육, 녹색전환 보조금 제도 등이 필요하다. 특히 탄소국경제도는 고용과 직결된다. 탄소 집약 산업에서의 일자리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공정전환(Just Transition)’ 정책도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제도와 산업을 잇는 현장의 전문가
이제 CBAM 대응의 현장에는 행정사(行政士)의 역할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행정사는 법령과 제도의 언어를 산업현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실무 전문가다. CBAM은 각종 인증, 보고, 인허가, 보조금 신청 등 복잡한 절차를 수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사는 기업의 실무를 지원하고 법적 오류를 예방하는 정책 실천자로서 기능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전문 인력이 부족해 EU 보고서 양식, 배출량 검증자료 제출, 행정심판 대응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행정사는 이러한 기업을 대신하여 제도 해석, 서류작성, 행정절차 이행을 지원함으로써 정부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제도적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업의 탄소인증 실패나 과징금 부과 등에 대한 행정심판·이의신청 절차를 대행하는 법률형 실무 전문가로서의 역할도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행정사는 ‘탄소정책의 해석자이자 산업현장의 실천가’로서 국가의 녹색전환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법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탄소국경제도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026년 시행을 앞두고, EU는 세부 이행규정(Delegated & Implementing Acts)을 2025년 말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1년 뒤, 한국의 수출기업은 탄소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지불하며 경쟁해야 한다.
이제 탄소는 돈이자 외교이며, 기술이자 규범이다. 법이 준비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탄소국경제도는 위기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의 기회다. 우리 스스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 ‘K-CBAM’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탄소규범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 산업계, 행정사 등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녹색무역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다.